상담실 책상 위에 가계부 한 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.
매달 지출 항목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, 마지막 줄에는 빨간 펜으로 마이너스 숫자가 적혀 있었어요.
30대 후반 여성분이었고, 이혼 후 두 아이를 혼자 키우고 계신 분이었습니다.
"양육비가 벌써 8개월째 안 들어와요. 그런데 생활비는 계속 나가야 하니까요."
그날 보여주신 가계부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.
상담 첫날의 가계부
그날 가계부를 함께 펼쳐 봤습니다.
월급은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받는 220만원 정도였고, 지출은 아이 둘 학원비와 월세, 공과금을 합쳐 매달 260만원을 넘겼습니다.
차액은 매달 카드론으로 메우셨고, 그렇게 쌓인 빚이 3년 사이 4천만원 가까이 됐습니다.
"양육비만 제때 들어왔어도 이 지경까진 안 왔을 텐데요"라는 말씀을 하시며, 가계부를 덮으셨던 기억이 납니다.
양육비 미지급은 법적으로 따로 다툴 수 있는 문제지만, 당장의 생활비 구멍은 별개로 메워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.
개인회생 신청을 결심하기까지 꽤 오래 고민하셨다고 했습니다.
"이것까지 하면 정말 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일 것 같았다"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.
하지만 매달 카드론 돌려막기를 반복하는 것보다, 한 번에 정리하고 새 가계부를 시작하는 편이 아이들에게도 낫다고 판단하셨습니다.
변제 계획은 36개월, 월 변제금은 소득에 맞춰 무리하지 않는 선으로 설계했습니다.
그렇게 새로운 가계부의 첫 페이지가 시작됐습니다.
변제 36개월, 그 사이 가계부
변제 기간 중반쯤, 가계부를 다시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.
적자 폭은 줄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던 시기였어요.
큰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며 교육비가 늘었고, 그 몇 달은 변제금 내기도 빠듯했다고 하셨습니다.
그때 저희 사무소를 통해 변제금을 일시적으로 조정하는 절차를 안내해드렸고, 몇 달 숨통을 틔운 뒤 다시 원래 궤도로 돌아오셨습니다.
"가계부에 마이너스가 하나씩 줄어드는 걸 보는 재미로 버텼다"는 말씀을,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.
이 시기에 양육비 미지급 건도 별도로 이행명령 절차를 함께 안내해드렸습니다.
개인회생과 양육비 문제는 서로 다른 절차지만, 같은 가계부 안에서 얽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.
결국 양육비 일부를 받아내는 데 성공하셨고, 그만큼 가계부의 적자 폭도 줄어들었습니다.
두 가지 문제를 따로 떼어 생각하기보다, 전체 가계 상황을 놓고 함께 정리해드리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.
숫자 하나하나가 그냥 숫자가 아니라, 그 뒤에 아이들의 생활이 걸려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둡니다.
완납 후, 지금의 가계부
완납 확인서를 받으러 오셨던 날, 가계부를 다시 가져오셨습니다.
첫 상담 때와 같은 공책이었는데, 이번엔 마지막 줄에 적힌 숫자가 플러스였습니다.
"처음으로 가계부에 플러스가 찍힌 날, 혼자 울었어요"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.
큰 금액은 아니었지만, 매달 조금씩 저축이 가능해진 상황 자체가 큰 변화였습니다.
"이제 아이들 학원 하나 더 보내줄 수 있겠다"는 말씀에서,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꼈습니다.
완납 후에도 양육비 문제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.
이행명령으로 밀린 금액 일부는 받아내셨지만, 그 이후로도 꾸준히 들어오는 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.
그래도 예전처럼 한 달 한 달이 생존 싸움처럼 느껴지진 않는다고,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.
빚이라는 한 가지 짐을 내려놓은 것만으로도, 남은 문제를 마주할 여력이 생긴 셈이었습니다.
저는 이 가계부가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기보다, 버틸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.
이 가계부를 다시 들여다보면서, 저는 숫자보다 그 사이의 시간을 생각하게 됩니다.
3년이라는 시간 동안, 적자였던 가계부가 조금씩 플러스로 바뀌어 간 과정 자체가 이분이 버텨온 증거였습니다.
한부모 가정에서 양육비 문제와 채무 문제가 함께 겹치는 경우를 저희 사무소에서도 자주 봅니다.
두 문제를 혼자 끌어안고 계시다면, 한쪽이라도 먼저 풀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.
지금 비슷한 가계부를 들여다보고 계신 분이라면, 편하게 그 가계부를 들고 찾아오셔도 좋겠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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